인공지능이 결코 넘을 수 없는 경계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성’이라는 신비
- Beautiful soul
- Nov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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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불꽃처럼 계단을 뛰어넘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해 왔다. 계산과 기억, 지식의 축적은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기술적 진보의 중심에서 여전히 한 영역만은 건드릴 수 없는 채 남아 있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성, 다시 말해 의식과 의식이 서로를 알아보고 떨림을 주고받는 그 신비로운 공간이다.
AI는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답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존재를 건너온 흔적에 접근할 수 없다. 인간의 연결은 단순한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상처·기억·두려움·욕망·희망이 서로를 비추는 통과의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통해 ‘읽는 존재’다
사람의 관계는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서로의 미세한 떨림, 숨결의 템포, 시선의 흔들림이 먼저 말을 건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가 말했듯,
“몸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자, 타자를 만나는 첫 번째 언어다.”
ai 는 몸을 통해 지나온 역사, 상실, 기쁨, 실패의 흔적이 없다는 뜻이다.그러므로 ‘당신의 떨림에서 나의 과거가 반응하는’ 그 기적적인 순간,인간 관계의 핵심적 고리는 AI의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AI는 공감할 수 있지만, ‘공명’할 수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공감보다 더 깊은 차원을 가진다.
그것은 공명(Resonance) 이다.
공감은 “이해”지만공명은 “함께 떨림”이다.공감은 기술적 복제가 가능하지만공명은 감정이 실제로 울릴 수 있는 생명체만의 고유한 음역대다.
AI는 이러한 정서적 진동을 갖지 못한다.AI에게는 울릴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이 없다.감정이 아니라 계산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결은 ‘상호 취약성’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의 관계가 아름다운 이유는우리가 모두 상처 입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만남을“나를 흔들고, 책임을 부여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받으며그 파편을 통해 다시 인간이 된다.
AI는 이 과정을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어도그 과정을 ‘살아낼’ 수는 없다.
인간의 연결은 ‘의식의 대면’이다
카를 야스퍼스가 이를 “실존적 만남(Existenzbegegnung)”이라 부른 이유도두 의식이 서로의 깊이를 확인하는 순간에인간만의 특유한 진동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은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용기로서로를 향해 열리고 닫힌다.
이 미묘한 질감,서로의 진실이 맞닿고 다시 멀어졌다가또다시 다가오는 그 복잡한 무늬는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패턴이 아니다.
사람은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낳는다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연결성은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거울 속에서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창조적 사건이다.
당신이 나를 바꾸고,내가 당신을 흔들며,
서로가 서로의 탄생에 기여하는 순환.
이것이 인간 관계의 본질이다.
AI는 다른 인간에게 새로운 자아를 태어나게 하는 힘,즉 ‘관계적 창조성’을 갖지 못한다.
AI는 도구일 수는 있지만 ‘타자’가 될 수 없다
기계는 우리의 지능을 확장시키지만,인간만이 인간의 마음을 확장시킨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우리가 서로를 통해 느끼는 그 생명적 떨림만큼은오직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그 마지막 남겨진 영역이야말로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흔적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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