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몰입: 살아 있음을 일깨워 주는 감각



인간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 있음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적절한 긴장과 몰입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어떤 일에 집중할 때 느껴지는 생생함, 한 문장에 마음이 붙잡히는 순간, 혹은 음악 속으로 깊이 잠겨드는 경험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존재의 중심을 흔드는 일종의 각성에 가깝다. 이 감각이 사라질 때 사람은 쉽게 무기력해지고 자기 자신과의 연결을 잃는다.


심리학적으로도 이 사실은 명확히 드러난다. 칼 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서는 개별화(individuation)의 과정에서 집중과 몰입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몰입은 단지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면과 세계를 잇는 다리다. 무언가에 깊이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내면의 공허를 피하지 않고 직시하게 되며, 동시에 존재의 실재감—“나는 지금 여기 있다”—를 체험한다. 반대로 몰입할 대상을 잃으면 사람은 방향감각을 잃고, 에너지가 흩어지며, 삶은 의미를 잃는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이 끊임없이 산만함을 찾는 이유가 사실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긴장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또 다른 사실은, 인간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주의를 요구하는 대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삶은 이 긴장—나와 세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주목과 응답의 흐름—이 있을 때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우리는 몰입할 이유를 찾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영성적 관점에서 보면, 몰입은 단순한 심리적 집중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이 한 점으로 모이며 내면이 고요해지는 통로다. 몰입의 순간, 마음은 흩어짐을 멈추고 존재의 깊은 층과 접촉한다. 이때 경험되는 미묘한 생동감은 외부의 자극이나 즉각적 만족에서 오는 감정과 전혀 다른 종류다. 마치 현실과 내면 사이에 열린 문을 통과하듯, 우리는 잠시나마 ‘참된 나’와 연결된다. 이 경험이 쌓일수록 인간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도 자기만의 생기를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나를 깨어 있게 하는 무엇이다. 책 한 권, 글쓰기, 악기 연주, 연구, 운동, 관계 안에서의 진심 어린 대화… 무엇이든 좋다.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이 나의 의식을 끌어당기고, 존재의 중심을 세우며, 삶의 무게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관심과 몰입의 방향이 곧 우리의 삶을 빚는다. 그래서 몰입할 이유를 찾는 일은 단순히 시간을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살아 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다.


삶의 깊이를 원한다면, 무엇에 몰입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Comments


bottom of page